저출산 대한민국, 어버이날 사라질까?

최근 5년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평균 출산율(2021년 기준)인 1.63명에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가 됐는데요.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정부는 ‘인구가 폭발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포스터를 배포하며 정책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으라고 권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한데요. 한국의 인구 정책 시대별로 살펴볼게요.

1960년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도록 독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하던 일본은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낳아라! 불려라! 길러라!’ 이 표어를 내걸고 자녀를 열 명 넘게 낳으면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병력이 될 수 없는 여아는 제외하고요.

해당 정책은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수립된 뒤 뒤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자, 이승만 정권 역시 안보 기반 확충을 위해 다산정책을 유지했는데요.
전쟁 후 베이비 붐으로 출산율(평균 5~6명)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선진 보건의료기술 도입으로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증가율은 연 3%에 이르렀으며, 특히 1958년엔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났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애를 많이 낳는 것이 조국 근대화의 걸림돌이라고 여기며, 1961년 박정희 정부는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발족,인구 증가 억제책을 펴기 시작합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나란히 시작된 가족계획 사업의 계몽 방식은 다양했는데요. 
우표·극장표·통장·주택복권에는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는 구호가 도배됐으며, 모든 방송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부는 무조건 아이 둘 이하로 등장해야 했습니다.

1970년대

1970년대부터는 자녀 수를 줄이자는 메시지가 더 직접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정부는 사람들이 아이를 여전히 많이 낳는 이유가 남아선호 사상에 있다고 파악했는데요. 
아들을 낳기 전까지 딸을 낳는 가정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하나 때문에 ···’ 같은 표어와 포스터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포스터에는 피임약 광고가 같이 붙어있었습니다.


정부는 1976년 아이를 1~2명 낳은 집은 세금을 줄여 주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펼쳐진 가족계획 캠페인의 결과로, 1960년대 초에는 한 집당 아이가 평균 6명에서 1970년대 후반에는 3.2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저출산 대한민국

1980년대

1980년대 들어와서는 이제 아이를 한 명만 낳자는 캠페인이 시작됩니다. 
그만큼 인구 증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긴박함은 컸는데요. 
1980년의 우리나라 인구는 3812만 명으로, 1960년 2501만 명 이후 20년간 50%가 넘는 1310여만 명이 증가한 상태였습니다.

1980년 합계 출산율은 2.83명까지 낮췄으나 가임여성 증가로 1970년대 중반까지 베이비 붐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구 증가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 표어와 포스터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반대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됩니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딸로 판단 말자’ 등이 있습니다.


당시 도입된 ‘경로우대증’도 이런 인구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남아 선호 사상을 철폐해야 한다는 데 착안해, 아들이 없어도 노후 대책이 보장되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198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해 70세 이상의 노인에게 경로우대증이 발급됐으며, 경로우대증을 소지하면 철도나 지하철을 포함한 교통 요금과 목욕 요금을 비롯해 사찰 등 문화재 입장 요금의 50%를 할인해 주기 시작합니다.
1983년에는 출산율이 현 수준의 인구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인구 대체율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졌다.

1990년대


1990년대는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기입니다. 
임신 초기 태아의 성별을 판별할 수 있게 된 1990년대부터 성비는 불균형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1990년에는 116.5로 뚜렷한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아 100명이 태어날 때, 남아는 116.5명이 태어났다는 뜻)


특히 둘째 아이나 셋째 아이의 성비가 불균형이 심했는데요. 
1993년 셋째 아이의 성비는 209.7명으로 남아가 여아의 두 배로, 이는 첫째 아이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낳지만, 둘째 아이나 셋째 아이는 반드시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죠. 
향후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1994년 정부는 인위적인 태아 성감별을 금지하게 됩니다.

저출산 대한민국

2000년대

1.5명 수준에서 머물던 출산율은 2005년 극적으로 떨어져 1.08명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립해 현재까지 인구정책을 총괄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이 급속하게 고조되면서 출산 장려 정책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등 많이 낳아 잘 기르자는 메시지로 전환되게 됩니다.

2010년대

2010년 이후 출산율은 급속하게 떨어지게 됩니다.
한국은 2013년부터 줄곧 OECD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으며,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대표적인 출산 장려 정책으로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육아를 위한 근로 시간 단축, 아동에 대한 의료비 지원, 아동 수당 지원, 고위험 임산부 지원,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등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023년도 한국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라는 수치가 발표됐는데요. 이제 저출산을 넘어서 ‘한국 소멸’이라는 위기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출산 대한민국